마치'생명' 같은 어떤 것이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중요한 디자인이나 방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여러분은 인간의 존재가 무의미하고 혼란스럽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악의적인 운명이나 의지의 산물일 것이다. 이것은, 대충 말하자면, 독일 철학자 아서 쇼펜하우어의 견해입니다. 사상가는 무의식적으로 우울해서, 그의 작품은 서양 사상의 위대한 희극 걸작들 중 하나를 상징합니다. 심지어 그의 이름에 대해서도 코믹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고상하고 입에 발린 '쇼펜하우어'와 다소 평범한 '아서'를 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관점에서, 모든 현실은 그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의 지나가는 산물이다. 왕성하고, 달래기 힘든 의지는 일종의 의도성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그것이 거기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사업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평판이 좋은 이유이다. 현실을 재현함으로써, 윌은 목적은 전혀 없이 자기 자신을 재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삶에는 진정한 본질이나 중심적인 역동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진실이라기보다는 끔찍한 일이다. 모든 웅대한 이야기들이 별이 빛나는 것들은 아니다.
의지는 순전히 자기 결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능하신 분을 풍자하는 악의적인 풍자처럼 그 자체가 목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와 창조의 나머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목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은 우리가 단순히 윌의 눈이 멀고 쓸데없는 자기 복제의 무력한 도구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고, 우리 안에서 진화함으로써, 우리의 자아 인식과 환상을 허용하는, 우리 자신의 가치관이다. 그것은 그것의 식욕 또한 우리의 것이라고 믿게 만든다. 이런 점에서, 쇼펜하우어의 눈에 있는 모든 의식은 거짓 의식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고 언어에 대해 말해진 것처럼, 의식은 우리의 존재의 완전한 무의미함을 감추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 역사로 알려진 대학살과 불임의 전경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의지의 교활한 승리를 나타내는데, 그들 자신의 불멸은 인간 꼭두각시의 죽음과 대조되어 극적으로 증명된다.
학자인 쇼펜하우어는 이성의 명백한 빛에 의해 사라지는 안개와는 거리가 먼, 그릇된 의식이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상가의 혈통에 속한다. 니체의 초기 작품들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은 또 다른 사상가였다. "진리는 추하다."그가 권력에의 의지로 글을 쓴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죽지 않도록 예술을 가지고 있다." 프로이드는 그의 비관적인 동료에 의해 깊이 형성된 또 다른 사람이었다. 쇼펜하우어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프로이트가 욕망으로 다시 세례를 주는 것이다. 프로이트에게 있어, 환상, 오해 그리고 현실에 대한 억압은 우연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것이다. 망각의 그러한 구원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삶에 대한 진정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 우리에게 더 바람직한 것이라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당연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수라면 어떻게 할까요? 레알 마드리드가 우리를 돌로 만들 정도의 거대함이었다면?
결국 우리는 왜 누군가가 삶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하는지 항상 물어볼 수 있다. 그들은 그것이 그들이 더 잘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가? 결국, 남성과 여성들은 분명히 이 비밀을 지니고 있지 않은 채 최상급의 삶을 살아왔다. 아니면 아마도 그들은 삶의 비밀을 계속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삶의 의미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호흡처럼 간단하게 말이죠.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요.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안구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명확한 시야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삶의 의미는 추구해야 할 목표나 진실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행동이나, 어쩌면 특정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일 것이다. 결국, 서술의 의미는 단지 그 단어의 '끝'이 아니라, 서술 그 자체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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